예배의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말로 귀중한 시간이 채워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참된 교회를 찾아 헤매고, 밤하늘에 빨갛게 수놓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정체성을 묻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우리를 향해 비웃으며 교회를 개혁하라고 조롱
교회 음악가이기도 했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 이 세 사람은 종교개혁에 대한 업적도 크게 인정받고 있지만 기독교음악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사람의 기독교음악에 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몇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배에 음악을 도입하는 문제에 있어서 서로
때문에, 그의 정치윤리적 권고는 봉건주의적 질서를 뒷받침해 주는 보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칼빈은 종교적 박해를 피하여 모여들었던 인문주의자들, 자유 종교 사상가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력에 의하여 비교적 거의 위협을 받지 않던 시민 사회적 정황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던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운명의 견해에 따른다면 ‘로마제국과 다른 모든 왕국의 기반은 우연적인 것도 아니고, 별들의 위치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다.’인간의 행동이 천체의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다면, 별들과 인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인간의 행동에 대하여 판결할 여지가 어디 남아 있겠는
하였다가 때로는 넷으로 하였다 하는가?’ 야누스가 쌍둥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네 방위를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주피터의 능력 및 주피터와 야누스 사이의 비교에 관하여’ 생각해보자. 사실 둘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피터를 영혼으로, 야누스를 신체로 묘사한다.
예비하였으니 그(녀)에게 허락 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요한 계시록 19: 7-8).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부는 성도를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인간의 모든 진정한 열망과 인류의 요구들의 성취를 의미할 것이다.
교회가 되었지만 이런 외형에 걸맞지 않게 각 교회 안에서는 산적해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와 예배의 질적인 문제다. 이런 문제들은 양적인 성장과 함께 발전해 오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무
모든 존재의 개체적 목적과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지니고 있다 모든 존재는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육체가 지니고 있는 욕망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이 있는데, 그는 이을 가리켜 선 혹은 행복(Eudaimonia)이라고 생각했다
* 나와 너의 대화 철학에서 인간은 세계를 두 개의 측면 ,두 개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지적했다. 태도(attitude)라는 말은 인생을 바라보는 심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의도 내지 자세를 의미한다. 인생의 기본적인 자세는 세상에 있는 모
인간 욕망의 작품 중에 하나인 유전자 조작 식품은 방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늘 먹는 식품이 유전자 조작 식품에 점령당하고 몸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영혼 구원에만 급급한 것이 우리교회의 실정이 아닌가? 이런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생명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한번 반성해 볼